사실에 관한 지식과 과학
현대인은 과학에 대한 신념으로 인해 지식에 대한 구조적 한계가 합리적인 사회 건설에 장벽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데, 과학의 급속한 성장을 빈번하게 접하기에 지식의 한계가 곧 극복될 거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단순한 현상의 경우에는 사건을 설명 혹은 예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복잡한 현상의 경우에 과학은
“사실에 관한 무지”에 부딪치게 된다.
진화론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만일 한때 존재했던 과거의 사실을 확인하거나 미래에 생겨날 특정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현재 존재하는 기관의 구조나, 미래에 발전된 형태를 완벽히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사실’ 전부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므로 불가능한 것이다.
정신과 사회의 동시적인 진화: 규칙의 역할
태초부터 정신을 부여받은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의 오류는 데카르트주의자의 이원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사실 정신이란, 부여받은 것이 아닌 인간이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며
정신이 규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규칙에 따른 성공이 성공적이라는 것이 증명됨으로 인해
행동을 규제하는 규칙의 복합체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에 따른 규칙의 특성은 아래와 같다.
규칙의 특성:
1. 명문화된 형태로 알려지지 않은 채 행동을 통해 규칙이 준수됨
2. 규칙이 준수되는 집단에게 그 규칙은 힘을 부여하므로 규칙이 준수됨
‘자연’과 ‘인공’의 잘못된 이분법
자연적으로(Physeia) 〈-〉 [ 관례로 (nomo) / 의도적인 결정으로 (thesei) ]
‘관례적인’과 ‘의도적인 결정으로’ 두 가지 다소 의미가 다른 용어를 ‘인위적인’으로 함께 사용하여 자연적인 것,
인위적인 것 두 가지로 구분하게 되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제 3의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인간의 의도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행동에 의한 결과” 같은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이러한 구분은 2000여 년간 도전 받지 않은 채로 사용되다가,
점차 ‘인간의 의도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행동에 의한 결과’ 라는 중간적인 범주의 현상이 인정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회현상이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 점점 더 인정되었다.
말기 스콜라 철학자들의 사회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자연’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 의도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
사회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법도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의 태도에 주춤하게 되어,
그 결과 이성과 자연법은 그 의미가 완전히 변하게 된다.
이성은 명백한 전례로부터 규칙을 형성하는 능력을, 자연법은 본래의 의미와는 거의 반대 개념인
“이성의 법”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